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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수양대군 조선의 임금

해외직구사이트 2019. 12. 27. 00:06

세조 수양대군 조선의 임금


조선 초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공을 들인 일곱 번째 임금이다. 


그는 불연속을 차버리고 왕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재정과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토지제도와 군사제도를 개혁하고 경국대첩을 편찬하는 등 많은 성과도 있었다.



서론


세조는 선양 대군 때 족벌주의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이 사건으로 안양 동생 안평은 물론 김종서와 황보인까지 모두 살해되었다. 


또한 번식의 신이 된 후 금성의 대군과 어린 단종이 전사하였다.


문종은 일찍 세상을 떠나 12세에 왕이 되었다.



본론


세조는 1417년 조선의 4대 왕인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태자 시절에는 수양대군으로 불렸으며,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에 뛰어났다고 한다. 


아버지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토지제도 개혁을 주도했고, 동생 문종(文宗)의 일도 도왔다.


병든 문종이 왕이 된 지 2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열두 살 세자가 왕이 되었다. 


이후 김종서와 황보인이 의정부를 교체하면서 세종 때의 안정된 군주제와 정치가 크게 약화되었다. 


1453년 수양대군은 정인지, 한명회, 권람 등을 이끌었다. 


그는 김종서 황보인 등 부관들과 함께 강력한 경쟁자 안평(安平)을 살해해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1455년 단종을 압박하여 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세금 추세에 반발하는 움직임은 계속됐다.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그를 복위시킬 계획을 세웠으며 동생 금성도 복위 운동을 벌였다. 


결국 세조는 번식의 신과 금성의 대군을 죽인 것은 물론 젊은 단종까지 죽였다. 


이어 왕권 강화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집현전과 신하들과 의논하여 왕이 공부하는 제도를 폐지하였다. 


또 최고행정기관인 의정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임금의 일을 직접 살피는 60조 원짜리 직계 라인업(직계 라인업)도 운영했다.





결론


세조는 여러 제도를 정비하여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고 중앙정부를 강화하였다. 


그는 토지와 인구의 비율에 맞게 군제를 개편했고, 이전 법의 시행으로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나라의 재정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또 군제도 개혁과 호패법 강화로 국방을 강화했고, 두만강 유역의 여진을 몰아내기 위한 북방 원정에도 신경을 썼다. 




조선의 기본법인 경국전을 간행하였고, 불교 경전과 역사 편찬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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